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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 혐의사실만으로 국민들을 분노케 한 언론의 보도행태

이지넷 2017. 2. 8. 00:39

[時論] 최순실게이트와 언론의 역할

혐의사실만으로 국민들을 분노케 한 언론의 보도행태

2016년 11월 05일 (토) l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미래한국 고문


온 국민들을 경악과 분노로 몰아넣은 최순실게이트는 언론이 앞장서서 파헤친 권력형 비리사건이다. 다시 말하면, 이 사건은 처음부터 언론의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고, 당국의 수사도 이끌어냈으며,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담화도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의 하야 요구와 함께 거리의 대규모 촛불시위까지 촉발한 언론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사건이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과거 그 어느 대형부정사건과 달리 언론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대표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현재까지의 언론의 보도를 중간 점검하자면 여러 흥미 있는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정치적인 측면에서 보면 지금까지 언론의 이 사건에 대한 보도는 박근혜 보수정권을 거의 식물정부로 만들 만큼 언론의 위력이 커서 그 반응도 격렬했다.


첫째, 보수-우파 성향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박근혜 정권을 코너로 몰아넣은 이들 보도가 설마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이번 사건의 보도 배경과 동기를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보수세력 일부에서는 이 사건이 ‘국민을 선동하기 위해 일부 언론과 좌파세력이 꾸며낸 거대한 음모’라고 본다.


둘째, 진보-좌파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독자와 시청자들은 박근혜 정권에 큰 타격이 되는 이들 보도들을 크게 반겼다. 이 때문에 보도에 상당한 선정성이나 오보의 소지 등 무리가 드러났지만 전체적으로 진실을 보도한 언론의 용기 있는 쾌거라고 찬양했다. 진보-좌파 세력은 이러한 판단에 근거해 박 대통령의 어떤 해명도 납득하지 않고 그의 하야만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정치적 색깔이 많지 않은 일반 국민들은 언론의 보도 내용에 충격과 실망을 느끼면서도 이 사건을 큰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정치 불안을 싫어하기 때문에 야당의 박 대통령 하야 요구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셋째, 청소년층의 반응인데, 이들은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이 아직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으나 그동안 한국 사회를 풍미한 금수저-흙수저 논쟁에 큰 영향을 받은 층이다. 이 때문에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나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 또는 횡령 혐의에 못지않게 그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의혹에 분노한다. 특히 정유라가 말했다는 “돈도 실력이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한 마디가 이들을 격분케 한 만큼 촛불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최순실 사건은 순수한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관점은 약간 달라진다. 이 사건에 대한 언론의 탐사보도식 방식과 줄기찬 추적은 일단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많은 언론인들은 보고 있다. 무릇 권리비리와 사회부정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이 언론 본연의 사명이라면 청와대라는 최고 권부까지 무력화시킨 이번 최순실사건 보도야말로 우리 사회에 크게 긍정적으로 기여한 것으로 평가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다만 필자는 한국 언론이 이번 최순실 사건 보도 과정에서 보인 여러 가지 문제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필자는 이번 최순실 사건 보도에 대해 언론계가 냉정하고 공정한 입장에서 짚어보지 않으면 안 될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성급한 단정이나 결론으로 점프하는 것을 피하면서 중간 점검을 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사건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세상에 공개되었는가를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 한겨레 중앙 3사의 주도적 역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맨 먼저 취재에 착수한 매체는 조선일보였다. 조선은 2016년 4월부터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에서 시작되어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이어지는 부정부패 혐의에 주목하다가 두 재단의 비리 혐의를 발견했다.


그 결과가 TV조선에 폭로되었다. TV조선은 금년 7월 26일과 8월 2일 “미르재단 설립 두 달 만에 대기업에서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안종범 대통령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깊숙이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포문을 열었다. TV조선은 또한 당시 ‘문화계 황태자’라는 차은택 씨와 관련해서도 “대통령에게 심야 독대 보고를 한다”는 관계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조선에 이어 8월말 경부터는 한겨레가 취재팀을 구성하고 본격적으로 취재에 나섰다. 맨 먼저 미르재단 관계를 최초로 터뜨린 조선이 그 후 속보를 자제하고 있던 시기였다. 한국 언론노조의 기관지인 미디어오늘에 의하면 당시 조선이 침묵을 지킨 것은 송희영 주필이 대우조선해양의 호화 접대를 받은 사건과 우병우 민정수석에 관련된 청와대와의 관계 때문에 청와대를 상대로 취재를 계속할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여하간 한겨레는 9월 20일자에서 재벌들이 출연해 만들어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최순실이 관여했다는 최초의 기사를 터뜨렸다. 그리고 최순실과 청와대 관계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이것이 최순실게이트가 시작된 단초였다. 이 때문에 보수우파세력은 한겨레를 박근혜 정권 타도의 선봉장으로 보고 있다.


최순실 보도의 제3주자인 JTBC는 2016년 10월 24일 메가톤급 보도를 방영했다. 이날 JTBC 뉴스룸은 최순실이 버리고 간 컴퓨터에서 밝혀졌다면서 최순실이 44개의 대통령 연설문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받았다고 그의 국정농단 기사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된 것은 지난 2014년 3월 28일 박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하면서 발표한 드레스덴 선언의 내용을 담은 한글 파일 형식의 연설문 파일이었다.


이 보도는 정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더불어 하야 요구를 촉발했다. JTBC가 이 같은 대형 뉴스거리를 터트리자 이번에는 TV조선이 다시 나섰다. 그동안 최순실에 대한 본격적인 보도를 중단했던 TV조선은 바로 이튿날인 25일 최순실이 독일로 출국하기 전의 인터뷰 영상, 최 씨가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용 의상 제작을 지휘하는 영상, 최 씨가 인사 검증과 공직자 감찰을 진행하는 청와대 민정수석실 인사에 개입한 정황 등을 보도했다.


결국 TV조선에서 시작된 최순실 보도는 주도권이 한겨레, JTBC를 거쳐 다시 TV조선으로 돌아간 셈이다. TV조선 측은 당시 자신의 역할을 물고기 사냥을 하려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 무리 중 맨 앞장을 선 모험심 많은 ‘퍼스트 펭귄’이라고 했다.


마침내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그는 최순실이 과거 자신이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으며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동안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중단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사과 담화는 다시 언론의 반박 대상이 되었다. JTBC는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한지 한 시간만인 이날 오후 5시쯤 ‘사회부 페이스북’을 통해 “추가로 분석된 ‘비공개 파일’을 오늘밤 8시 뉴스룸에서 공개한다”고 예고한 다음 “최순실의 PC엔 대통령의 인사와 대한민국의 국정까지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정작 그 시간이 되자 JTBC는 다시 최순실 문건을 공개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취임식 대행사 선정에도 최순실이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TV조선과 한겨레 및 중앙일보가 최순실 사건의 보도를 통해 이를 다른 매체에 확산시킨 데 대해 한국 언론노조 기관지인 미디어오늘은 “TV조선·한겨레·JTBC의 콜라보, 최고권력을 무너뜨렸다”고 썼다. 이 신문은 두 재단의 모금 의혹에 대해서는 TV조선이, 박 대통령의 측근 실세인 최순실에 대해서는 한겨레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썼다. 또한 JTBC의 최 씨의 국정농단 보도가 결정타였다고 평가했다.


혐의 사실만으로 국민들을 분노케 한 언론의 보도 행태


최순실 사건은 물론 이상의 세 매체 이외에 다른 대부분의 신문 방송들도 집요하게 보도했다. 그러나 여기서 우선 필자는 중간 점검하는 입장에서 이들 세 매체의 보도 방식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지적하려 한다. 첫째 문제는 한국 언론의 체질처럼 되어버린 성급하고 선정적인 보도 태도이다.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은 지난 10월 5일이고, 이 사건의 핵심 인물인 최순실이 귀국해 검찰에 출두한 것은 10월 30일이었다. 그리고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검찰 조사를 받기 시작한 것은 11월 2일이어서 이제 막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 셈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이미 이 때 사건의 모든 사실이 밝혀지기라도 하듯 사실상의 결론을 내고 말았다. 이 바람에 분노한 국민들, 특히 초등학생들까지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시위를 연일 벌였다.


대통령의 하야는 헌정 중단을 의미하는데, 북핵과 경제위기로 비상사태에 있는 나라가 아직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는 문제로 대뜸 사태를 이렇게 만든 데는 언론의 위력이 성급하게 작용한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둘째, 서양 언론과 달리 한국 언론은 무슨 일이 터지면 일단 크게 보도해 놓고 본다. 이것은 한국언론의 전통적인 속보주의와 매체 간의 속보 경쟁이 초래한 만성병이다. 닉슨 대통령의 하야를 몰고 온 워터게이트사건 당시 미국 신문들을 1단기사로 시작해서 혐의 사실이 나타남에 따라 기사가 점점 커져 나중에는 톱기사로 발전시켰다.


확실한 근거가 드러나지 않는 사건에 대한 한국 언론의 묻지마식 대서특필은 언론윤리강령과 그 실천요강에 규정한 미확인보도의 명시원칙과 미확인사실의 과대 편집금지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필자는 한국 언론계가 이번 최순실 사건 보도를 냉정하고 차분하게 점검하고 평가해 볼 기회가 오기를 기대한다.


셋째, 한국 언론은 아직 용의단계나 혐의단계에 지나지 않는 사건을 일방적인 증언만으로 침소봉대하는 체질화된 습성이 있다. 여러 언론 매체들이 경쟁적으로 이 같은 무책임한 행태를 반복하기 때문에 일단 혐의선상에 오른 용의자나 피의자는 어느 새 진범처럼 되고 만다.


이른바 ‘언론재판’이다. 이번에도 언론들은 박 대통령이 두 재단 설립동기에 대해 문화체육 분야를 집중지원하고 우리 문화를 알리며 어려운 체육 인재들을 키움으로써 해외시장을 개척하고 수익 창출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한 점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고 무조건 재단 설립이 나쁜 것으로 몰아붙였다.


만약 대통령이 순수한 의도에서 재단 설립을 추진했다면 청와대가 여기에 개입했다 하더라도 정책상의 잘 잘못을 따질 수는 있겠지만 이를 하야 사유는 되기가 어려운데도 이를 범죄시 했다. 언론윤리실천요강에서 규정한 관계자의 답변기회제공, 피의사실의 검증원칙, 형사피의자의 무죄추정원칙을 무시하는 행태이다.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미래한국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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